이번 추석엔 홀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 혼자서 여행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항상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던 터라 홀로 하는 여행의 낯설음이 어떨까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고, 내년에는 홀로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그 낯설음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회사 일이 많아서 1주일 전에야 숙소와 기차표를 구하였고, 계획하던 추석 당일 아침 7:50분차를 타고 경주에 도착했다. 경주역에서 내리자마자 첫 느낌은 여느 지방 도시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비가 내려 날씨가 약간 쌀쌀했고, 짐이 무거워 최대한 빨리 숙소부터 찾아갔다.

밑에 있는 사진이 3박 4일동안 숙소로 햇었던 드림힐 모텔이다. 매일매일 침대시트를 갈아주시고 방청소를 해주셔서 깨끗한 방에서 지낼 수 있어 좋았다. 가격도 일 4만원 정도로 괜찮았고 방도 넓은 편이라서 다녀오고 나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처음 여행을 와서 여행 계획없이 무작정 숙소만을 잡고 와서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녀야 할지 몰랐다. 버스를 타고 싶었는데, 버스 노선이 많기도 하고, 노선이 복잡해서 어떻게 가야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택시를 타고 무작정 도착한 곳이 바로 대릉원이다. 대릉원에는 천마총 (TV역사관련 프로그램에서 보니 천마가 아니라 기린을 그린것이어서 이름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던데, 예전부터 천마총으로 불려서 인지 천마총이라는 이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대릉원에는 천마총과 미추왕릉이 있었다. 가는 길이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어서 숲속길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천마총안은 뭔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고 나면 '어라 이게 다인가?'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적석목곽분( 나무로 관을 만들어 돌을 서로 비껴서 쌓아올린 봉분)의 모습을 잘 복원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천마총을 나와 첨성대로 방향을 향했다. 첨성대 가는 길 오른편으로 밑에 보이는 고분이 보인다. 여기가 동부 사적지대로 계림, 월성 등의 유적이 있다. 첫날은 비가 많이 물이 많아 흙이 질퍽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한 200 m정도를 걸어가고 나니 첨성대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선덕여왕 시절 천문관측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첨성대는 날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치 황량한 등대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 돌 하나하나와 1000년가까이 그 곳에 서 있는 그 시절의 무게가 나름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첨성대 바로 옆으로는 꽃단지가 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곳인지 원래 있던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옆에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것만으로 기분을 좋게해준다. 비가와서 우중충한 기분을 바꿔주는 것 같았다. 꽃단지 중간에는 역시 돌탑이 쌓여있다. 경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저 돌탑들을 보면 사람들의 소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꿈을 담는 그릇처럼 보인다. 저 꿈들이 다 이루어지는 날 하늘로 훨훨 날아가려나~



아름다운 꽃길을 지나 한 3~400 m정도 더 가면 국립 경주 박물관이 나온다. 경주박물관은 정말 볼게 많았다. 고고관, 안압지관, 미술관, 특별관 등이 있는데, 특별관 이외에는 전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음성으로 각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는 기기가 있어 빌렸는데, 절반 정도 나오다가 맛이 갔다. 그래서 돌려줄 때 얘기했더니 절반을 환불해 주었다. 박물관에 볼 게 많아서 그런지 약 3시간 정도 돌아다니면서 본 것 같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허리띠, 제사때 의식을 위해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실제 생활에서는불편하여 착용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고 한다. 머리의 날출(出)을 겹쳐 놓은 듯한 모습은 '나무'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 앞에 달린 금으로 된 장식은 나무에 달린 '입', 옥으로 된 장식은 '열매'를 의미한다. 나무를 상징물로 삼은 이유는 나무가 하늘과 땅의 매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지 때문이다. 그 뒤는 사슴 뿔로 당시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고 신성시 생각되었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당시 굉장히 많은 금이 출토되는 데 그 양이 그 부근에서 찾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알타이 산맥에 금이 많이 나는데, 그것을 수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신라 국호의 유래, "날마다 새로워지는 덕으로, 사방을 망라한다"라는 뜻이다.

미술관에 전시된 11면 관음보살 부조, 11면이라는 것은 관음보살의 머리를 살펴보면 얼굴이 11개 있어서 그런 것이다. 석굴암에 만들어진 것을 모사한 작품인데, 비례도 너무 좋고, 비례때문인지 부조의 모습에서 위엄이 서려있었다.

박물관 내에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의 모사작품. 다보탑은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현재 사자상이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복원작품에는 네개의 사자를 원래의 모습대로 4개로 배치했다고 한다. 역시 신라의 대표적인 유물인 만큼 무언가 그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상서로운 듯하다. 석가탑의 설명을 보니 탑은 석가모니가 다른 중생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을 말한다고 한다. 주변에 8방위로 연꽃 모양의 돌이 놓여있는데, 이는 각 방위에서 설법을 듣는 중생들의 모습이라고 한다. 한편의 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박물관 시간은 평일 오후 6시, 휴일에는 오후 7시까지 연다. 박물관에선 볼 것이 많아서인지 시간이 모자라 제대로 보지 못한 유물도 있었다. 그래도 일정을 길게 잡아서 쫓기는 마음이 없이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하나하나의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안압지로 향했다. 안압지를 가는 길은 길이 약 150m 정도 직사각형 모양의 연못에 연잎들이 가득차 있었다. 연잎 중간에는 연꽃들이 피어있었는데, 비가 와서 향기는 못 맡았지만 생에 처음으로 연꽃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안압지를 들어가니 정자와 같은 건물이 2개 서 있었다. 가는 길에 흙이 많아 땅이 질퍽질퍽했다. 가는 길이 좋지 않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주변 경치를 보니 그런 기분은 싹 사라졌다.

안압지의 원래 이름은 임해전지이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연못에 기러기와 오리가 찾아들어 안압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한다. 아래 모형은 원래 안압지의 모습이고 중간에 다리는 곧 복원공사를 할 것이라고 한다.


첫날 유일하게 찍은 사진


안압지는 조명 때문인지 밤에 오는 게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연못에 비친 건물과 숲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첨성대를 지난 길을 다시 돌아왔다. 낮에 본 첨성대와 밤에 본 첨성대는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조명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낮에 본 첨성대는 쓸쓸해 보였는데, 밤에 본 첨성대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혼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비가 내려 날씨가 약간 쌀쌀했고, 짐이 무거워 최대한 빨리 숙소부터 찾아갔다.
밑에 있는 사진이 3박 4일동안 숙소로 햇었던 드림힐 모텔이다. 매일매일 침대시트를 갈아주시고 방청소를 해주셔서 깨끗한 방에서 지낼 수 있어 좋았다. 가격도 일 4만원 정도로 괜찮았고 방도 넓은 편이라서 다녀오고 나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처음 여행을 와서 여행 계획없이 무작정 숙소만을 잡고 와서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녀야 할지 몰랐다. 버스를 타고 싶었는데, 버스 노선이 많기도 하고, 노선이 복잡해서 어떻게 가야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택시를 타고 무작정 도착한 곳이 바로 대릉원이다. 대릉원에는 천마총 (TV역사관련 프로그램에서 보니 천마가 아니라 기린을 그린것이어서 이름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던데, 예전부터 천마총으로 불려서 인지 천마총이라는 이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대릉원에는 천마총과 미추왕릉이 있었다. 가는 길이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어서 숲속길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천마총안은 뭔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고 나면 '어라 이게 다인가?'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적석목곽분( 나무로 관을 만들어 돌을 서로 비껴서 쌓아올린 봉분)의 모습을 잘 복원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천마총을 나와 첨성대로 방향을 향했다. 첨성대 가는 길 오른편으로 밑에 보이는 고분이 보인다. 여기가 동부 사적지대로 계림, 월성 등의 유적이 있다. 첫날은 비가 많이 물이 많아 흙이 질퍽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한 200 m정도를 걸어가고 나니 첨성대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선덕여왕 시절 천문관측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첨성대는 날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치 황량한 등대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 돌 하나하나와 1000년가까이 그 곳에 서 있는 그 시절의 무게가 나름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첨성대 바로 옆으로는 꽃단지가 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곳인지 원래 있던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옆에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것만으로 기분을 좋게해준다. 비가와서 우중충한 기분을 바꿔주는 것 같았다. 꽃단지 중간에는 역시 돌탑이 쌓여있다. 경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저 돌탑들을 보면 사람들의 소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꿈을 담는 그릇처럼 보인다. 저 꿈들이 다 이루어지는 날 하늘로 훨훨 날아가려나~
아름다운 꽃길을 지나 한 3~400 m정도 더 가면 국립 경주 박물관이 나온다. 경주박물관은 정말 볼게 많았다. 고고관, 안압지관, 미술관, 특별관 등이 있는데, 특별관 이외에는 전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음성으로 각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는 기기가 있어 빌렸는데, 절반 정도 나오다가 맛이 갔다. 그래서 돌려줄 때 얘기했더니 절반을 환불해 주었다. 박물관에 볼 게 많아서 그런지 약 3시간 정도 돌아다니면서 본 것 같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허리띠, 제사때 의식을 위해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실제 생활에서는불편하여 착용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고 한다. 머리의 날출(出)을 겹쳐 놓은 듯한 모습은 '나무'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 앞에 달린 금으로 된 장식은 나무에 달린 '입', 옥으로 된 장식은 '열매'를 의미한다. 나무를 상징물로 삼은 이유는 나무가 하늘과 땅의 매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지 때문이다. 그 뒤는 사슴 뿔로 당시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고 신성시 생각되었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당시 굉장히 많은 금이 출토되는 데 그 양이 그 부근에서 찾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알타이 산맥에 금이 많이 나는데, 그것을 수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신라 국호의 유래, "날마다 새로워지는 덕으로, 사방을 망라한다"라는 뜻이다.
미술관에 전시된 11면 관음보살 부조, 11면이라는 것은 관음보살의 머리를 살펴보면 얼굴이 11개 있어서 그런 것이다. 석굴암에 만들어진 것을 모사한 작품인데, 비례도 너무 좋고, 비례때문인지 부조의 모습에서 위엄이 서려있었다.
박물관 내에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의 모사작품. 다보탑은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현재 사자상이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복원작품에는 네개의 사자를 원래의 모습대로 4개로 배치했다고 한다. 역시 신라의 대표적인 유물인 만큼 무언가 그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상서로운 듯하다. 석가탑의 설명을 보니 탑은 석가모니가 다른 중생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을 말한다고 한다. 주변에 8방위로 연꽃 모양의 돌이 놓여있는데, 이는 각 방위에서 설법을 듣는 중생들의 모습이라고 한다. 한편의 불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박물관 시간은 평일 오후 6시, 휴일에는 오후 7시까지 연다. 박물관에선 볼 것이 많아서인지 시간이 모자라 제대로 보지 못한 유물도 있었다. 그래도 일정을 길게 잡아서 쫓기는 마음이 없이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하나하나의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안압지로 향했다. 안압지를 가는 길은 길이 약 150m 정도 직사각형 모양의 연못에 연잎들이 가득차 있었다. 연잎 중간에는 연꽃들이 피어있었는데, 비가 와서 향기는 못 맡았지만 생에 처음으로 연꽃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안압지를 들어가니 정자와 같은 건물이 2개 서 있었다. 가는 길에 흙이 많아 땅이 질퍽질퍽했다. 가는 길이 좋지 않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주변 경치를 보니 그런 기분은 싹 사라졌다.
안압지의 원래 이름은 임해전지이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연못에 기러기와 오리가 찾아들어 안압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한다. 아래 모형은 원래 안압지의 모습이고 중간에 다리는 곧 복원공사를 할 것이라고 한다.
첫날 유일하게 찍은 사진
안압지는 조명 때문인지 밤에 오는 게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연못에 비친 건물과 숲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첨성대를 지난 길을 다시 돌아왔다. 낮에 본 첨성대와 밤에 본 첨성대는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조명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낮에 본 첨성대는 쓸쓸해 보였는데, 밤에 본 첨성대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혼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