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C%84%EA%B7%B8%EB%85%B8#cite_note-0)
위그노에 대한 지식이 없어 어떤 사람들이었을지 떠오르지 않아, 기사를 보니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었다.
위그노 엑소더스의 결정판은 영국이다. 당시 영국의 찰스 2세는 위그노를 받아들이는 특별이민법을 제정해 수많은 위그노 기술자의 영국 정착을 도왔다고 한다. 참여정부 첫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김태유 서울공대 교수는 “위그노 기술자들이 증기기관의 기반기술을 개발하고, 이것이 식민지 시장 개척, 중상주의에 의한 자본축적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면직공업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식민지 개척과 자본축적에만 몰두한 데 비해 영국은 기술발전까지 추구하면서 산업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영국이 세계 패권을 잡는 데 숨은 공로자가 바로 위그노인 셈이다. - 출처: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710310224
위그노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들
즉, 1517년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후 마르틴 루터의 저작물들이 유럽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프랑스에서도 개혁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는 시작부터 박해를 받았으며 최초의 순교자가 1523년 화형에 처해졌다. 1534년 10월 가톨릭 미사의식을 맹렬히 공격하는 플래카드가 거리와 왕궁에서 발견되자 가톨릭 세력은 큰 충격과 함께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와 더불어 장 칼뱅을 포함한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피신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계속 확산되었으며 곧 귀족들 가운데서도 지지자가 생겨났다.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박해도 계속되었으며 1명씩 처형되던 관행이 대량학살로 비화했다. 앙리 2세 치하에서는 대개의 감옥이 위그노들로 가득 찼다. 이후 1562년 3월 1일 바시의 학살이 발단이 되어 위그노전쟁이 일어났다.
특히 1572년 성바르톨로메오의 학살 때는 많은 사망자가 나왔는데 위그노의 주요인물 거의 모두가 파리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나머지 지역에서도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이 학살사건 이후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1574년 샤를 9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앙리 3세 치세기에는 잠깐 동안을 제외하고 전쟁의 연속이었다. 1589년 앙리 3세가 암살된 후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앙리 4세는 프로테스탄트였으나 1593년 7월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비로소 왕국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1598년 4월 13일 앙리 4세가 위그노의 신앙 자유를 보장하는 이른바 '낭트칙령(勅令)'의 발표로 전쟁이 일단 종결되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절대군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프랑스의 통일을 원하여 1598년의 '낭트칙령'을 파기하였다. 이후 프랑스 국내에서 지하운동을 계속한 신자도 있었으나 국외로 도피한 자도 많았는데, 프랑스 혁명 때까지는 그들의 자유를 회복할 수 없었다. - 출처 : http://mtcha.com.ne.kr/world-term/france/term19-wigno.htm
책에서는 완전히 옳다라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위그노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프랑스의 해상세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위그노이다. 이들은 사략선을 가지고 있어 비스케 만의 에스파냐 선박을 효과적으로 약탈할 수 있었다. 가톨릭 집단들이 개신교도 제한을 추진하면서 위그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루이 14세와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던 콜베르는 교역과 해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꺼렸다.
위그노들은 콜베르가 죽고난 뒤에 더욱 더 처지가 좋지 않았는데, 그들 중 다수가 현찰과 기술을 챙겨 이주하였다. 이 때문에 위그노가 프랑스 경제에 많은 손해를 미쳤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당시 이주한 위그노와 프랑스에 남아있던 위그노들과 서로 네트워크로 연계되어 무역 확장에 기여한 것으로도 보인다.
전반적으로 위그노는 기술자 혹은 지식인들의 집단으로 보인다. 기술로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눈에 띄인 것 같다. 하지만, 차별적인 정책으로 인해 그 기술이 외국으로 나가게 되는 수순을 밟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술자 집단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에는 기술자 집단의 힘이 굉장히 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기술쇠퇴와 경제쇠퇴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